BORROWED CAT

CULTURE

스크린의 절대 권력자는 어떻게 고양이에게 간택되었나

007의 블로펠드부터 대부의 코를레오네까지. 세계를 지배하려는 냉혈한들이 고양이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4킬로그램의 고양이가 거대한 권력자를 자신의 전용 난방기로 선택했을 뿐이다.

영화 속 악당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고양이

어둠이 짙게 깔린 방, 가죽 회전의자의 팔걸이 위로 나직하고 일정한 숨소리가 울린다. 화면 속 인물은 자신이 수만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절대 흑막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의 무릎 위에 웅크린 채 턱을 맡기고 있는 네 발 달린 짐승의 시선에서 보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이 거대한 인간은 그저 적당한 온도를 내뿜고 60BPM의 일정한 속도로 턱을 긁어주는 맞춤형 온열 가구일 뿐이다.

영화 속 악당은 왜 늘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을까. 수많은 영화 평론은 악당이 자신의 냉혹함과 잔혹성을 과시하기 위해 고양이라는 시각적 소품을 선택했다고 해석해 왔다. 하지만 질문의 주어를 뒤집어 보면 전혀 다른 진실이 드러난다. 악당이 고양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이 권력자를 전용 방석으로 간택한 것이라면 어떨까.

대부를 간택한 이름 없는 길고양이

고양이가 지배자를 선택하는 역학은 1972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부 첫 장면에서 생생하게 증명되었다. 마피아 대부 돈 비토 코를레오네가 어둠 속에서 장의사의 눈물 어린 복수 청탁을 들을 때 그의 무릎 위에는 얼룩무늬 길고양이가 태연하게 누워 있었다.

영화 대부의 마피아 대부 돈 비토 코를레오네의 무릎에 앉은 얼룩무늬 길고양이

타센이 펴낸 제작 아카이브에 따르면 이 고양이는 대본 어디에도 없던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의 배회묘였다. 코폴라 감독이 세트장 구석에서 발견해 말론 브란도의 품에 불쑥 안겼을 때, 길고양이는 거장의 무릎 위에서 도망치기는커녕 즉시 자리를 잡고 깊은 골골송을 뿜어냈다. 소리가 너무 커서 대사 녹음 트랙이 묻히는 바람에 후시녹음까지 진행해야 했을 정도였다.

뉴욕 암흑가를 호령하는 거물 마피아조차 촬영 내내 고양이가 깨지 않도록 손동작의 각도를 조심스레 맞추어야 했다. 대부가 고양이를 연출의 도구로 삼은 것이 아니라, 스튜디오를 떠돌던 길고양이가 마침 가장 따뜻하고 조용하게 앉아 있던 한 인간을 자신의 전용 쿠션으로 간택한 순간이었다.

왜 고양이는 영웅보다 악당을 선호하는가

동물 행동학적으로 살펴보면 고양이가 영웅보다 악당의 집무실을 더 안락한 영토로 선택하는 것은 필연에 가깝다. 영웅들은 지나치게 시끄럽고 분주하다. 소리를 지르고,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며,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인다. 평온과 낮잠을 최우선으로 삼는 고양이에게 영웅의 곁은 위험천만한 소음 지대일 뿐이다.

반면 비밀 요새의 악당들은 고양이에게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1963년 영화 007 위기일발의 블로펠드부터 1996년 포켓몬스터의 로켓단 보스 비주기, 형사 가제트의 닥터 클로에 이르기까지, 절대 흑막들은 하나같이 어둡고 조용한 최고급 가죽 의자에 앉아 몇 시간이고 미동도 없이 사색에 잠긴다.

비글스워스

게다가 악당들은 호들갑을 떨며 아기 취급을 하지도 않는다. 냉정한 지배자들은 오직 일정한 리듬으로 턱밑과 등줄기를 쓰다듬을 뿐이다. 1997년 영화 오스틴 파워에서 털을 잃은 스핑크스 고양이 미스터 비글스워스가 신경질을 부릴 때마다 전전긍긍하는 닥터 이블의 모습은, 대중문화의 악당들이 사실상 고양이의 심기를 관리하는 충실한 관리인으로 길들여졌음을 유쾌하게 폭로한다.

지배의 착각, 4킬로그램의 진짜 주인

악당과 고양이의 관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완벽한 전도다. 악당은 수억 명의 인류를 굴복시키고 세계를 손아귀에 쥐려는 거대한 나르시시즘에 도취해 있다. 그리고 자신의 무릎 위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맹수를 보며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오만한 생명체조차 내 카리스마 앞에서는 고개를 숙인다"고 착각한다.

악당은 자신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믿지만, 무릎 위의 고양이는 자신이 그 지배자를 지배하고 있음을 안다.

인류의 역사에서 고양이는 소나 개처럼 훈련이나 강압으로 가축화된 적이 없다. 곡물 창고의 쥐를 잡기 위해 스스로 인간의 거주지로 걸어 들어와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을 선별해 공존을 택했다. 스크린 속 악당의 무릎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지배자는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지만, 그의 무릎 위에 앉은 4킬로그램의 동물은 주인의 야망 따위에는 티끌만큼의 관심도 없다. 고양이의 시선에서 악당은 그저 자신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는 훌륭한 난방 기구이자 턱 긁는 손길이 능숙한 생체 가구일 뿐이다. 절대 권력자가 전 세계를 장기말로 부리는 동안, 고양이는 단 한 번의 야옹 소리도 없이 그 절대 권력자를 자신의 전용 방석으로 부리고 있는 셈이다.

진짜 주인이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

  1. 1963영화 007 위기일발, 흰 페르시안 고양이를 쓰다듬는 블로펠드의 손과 목소리 첫 등장
  2. 1967영화 007 두 번 산다, 블로펠드의 얼굴과 페르시안 고양이 전면 등장
  3. 1972영화 대부 개봉, 말론 브란도의 오프닝 길고양이 즉흥 연기 공개
  4. 1983애니메이션 형사 가제트 방영, 닥터 클로와 매드 캣 등장
  5. 1996포켓몬스터 출시 및 애니메이션 방영, 비주기와 페르시온 등장
  6. 1997영화 오스틴 파워 개봉, 닥터 이블과 미스터 비글스워스 패러디 등장

악당의 긴 독백 속에서 고양이를 쓰다듬는 손길은 서스펜스의 뇌관으로 작동한다. 사람들은 그 손길이 멈추는 순간 악당의 잔혹한 명령이 떨어질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고양이의 관점에서 보면 그 손길이 멈추는 이유는 단순하다. 온열 기구의 서비스 시간이 끝났거나,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고 다른 따뜻한 자리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무심하게 하품을 하며 무릎 위를 박차고 내려가는 순간, 지배자의 절대적인 카리스마는 흔적도 없이 증발한다. 스크린 속 악당은 세상을 파멸시킬 힘을 가졌을지언정, 제 무릎을 떠나 유유히 걸어가는 4킬로그램의 작은 생명체는 단 1초도 붙잡아두지 못한다.

인간이 세계를 정복했다고 믿을 때마다 고양이는 그 오만한 지배자의 무릎 위에 턱을 괴고 누워 나직한 골골송으로 속삭인다. 당신이 지배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인간들의 세상일 뿐이라고.

참고

CULTURE

에도 막부의 검열을 조롱한 우키요에 고양이들

가부키 배우와 유곽 판화가 금지되자 화폭에 고양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1841년 덴포 개혁의 엄혹한 검열에 맞서 에도 서민과 우타가와 쿠니요시가 벌인 유쾌한 시각적 게릴라전.

약 6분